집 이야기 2

이 집에 일년을 더 살기로 하고보니 평소때 거슬렸던것들이 더 눈에 거슬렸다.
더럽혀진 벽들과 삐걱거리는 마루바닥, 칙칙하기 짝이 없는 부엌 캐비넷, 그리고 5년동안의 끊임없는 사용으로 더러워진 샤워. 이중에서 내가 어떻게 할수 있는것은 샤워밖에 없었다.

타일 사이를 깨끗하게 유지하기위해 한번씩 페이퍼타올을 클로락스에 적셔 벽에 붙혀두기도 하고 (이게 효과는 최고!) 수시로 클로락스펜으로 부분적으로 표백을 해내기도 했는데 이것도 몇년을 하다보니 타일 사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더이상 깨끗해지지도 않는 지경까지 이르러… 관리인에게 grout를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다. 돈을 줄 마음까지도 있었는데 빌딩관리차원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당연하다는듯이 암말 안하고 하루 날잡아 다시 깨끗하게 해줘서 얼마나 고맙던지.

말을 꺼내길 잘했다라고 생각을 하던 차 그담날 아침 관리인이 다시 나타나 배드뉴스가 있다고… (우리집도 아닌데 나빠봤자 얼마나 나쁘겠어)… 뭐냐고 물었더니 샤워나 너무 오래되다보니 파이프가 헐어버려서 물이 아랫집으로 샌단다. 새 파이프로 갈기 위해선 타일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한다고…

이 얘길 듣는순간 한숨이 나오기는 커녕 샤워를 레노베이션 한다는소식에 나에겐 오히려 굿뉴스로 들림. 하지만 빌딩메니지먼트 회사가 좀 짜서 멀쩡한 샤워 윗부분은 손을 안댈꺼라는거다. 그니까 바닥을 포함한 반만 뜯어내고 다시 타일을 까는거였다. 그게 어디냐..어차피 젤 더러운건 바닥이었기때문에 이것도 만족~
바로 이틀뒤 공사에 들어갔다.

내가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몰랐던게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것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 있는데 한개밖에 없는 화장실에 남자 두명이 터억 버티고 있으니 안그래도 자주 가야하는 화장실을 쓸수가 없는거다. 이날은 일부러 물도 많이 안마시고 최소한 가는 횟수를 줄이려고 어찌나 힘을 썼던지 회사 가는날보다 몸이 더 축 쳐지는게 힘이 쪽 빠졌다.

그것뿐인가..
집 한중간에 있는 화장실벽을 망치와 드릴로 다 뜯어내다보니 거기서 나오는 먼지가 엄청났다. 안개와 같은 흰 먼지가 자욱한것이… 으아~ 게다가 오래된 파이프에서 나는 하수도 냄새..ㅡ.ㅜ
마루는 물론이고, 방문들을 다 닫아놨어도 사이로 스며드는 먼지들도 장난 아니고… 집에서 신발을 신고다녀야 했다. ㅠㅠ
이렇게 첫날을 보냄. 다행히 별로 보고싶지 않은 바닥부분은 이렇게 덮어두고 갔더군.

샤워를 못쓰니 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욕조에서 목욕을 해야하는거다. 일꾼들이 가면 일단 그담날 다시 더러워질 욕조만이라도 깨끗이 씻어두는게 일. 목욕도 매일아침 한다는게 얼마나 불편한지를 내가 몰랐던게지. 목욕은 그렇다치고 이 배를 가지고 몸을 숙여 머리를 감는게 가장 어려웠다. 심지어는 이짓을 해야하는 나의 상황이 넘 황당해서 헛웃음까지 나더군. -_-;;

둘째날은 타일 붙이는 날. 역시나 이것도 타일 자르고 하는데서 엄청난 먼지가…
전에 왔던 나이드신 아저씨는 안오고 젊은 남자 둘이가 히히덕 거리며 거의 놀다시피 일을 해놓고 간다. 타일 붙혀놓은 모양이 좀 어설펐지만 암말 안함.

셋째날은 타일 사이를 grout하고 샤워문을 다시 다는 날. 원랜 이날이 마지막날이어야 함.
어제 왔던 젊은남자 중 한명만 와서 타일을 마무리 짓고 샤워문만 다는데 한 3시간 소유. 문을 달긴했는데 닫기지가 않아 혼자 온갖 욕을 하며 낑낑거림. 난 마루에서 눈치만 보고 암말 안함.
여러번 문을 뜯었다 달았다 하더니 오후 3시정도 돼서 다 했다고 간다.
그남자를 보내고 화장실에 들어가보고 갑자기 열이 팍!
타일도 삐뚤삐뚤, 샤워문도 여전히 닫히지 않고 거의 봐주기 어려운 상태로 해놓고 갔다.
당장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 그사람이 확인하러 올라왔다. 꼼꼼하고 천직의식이 강한 우리 관리인도 당연히 화가 난다. 당장 내일 다시 오라고 하겠단다.
그래서 우선 안심.

그담날 관리인에게 열쇠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누가 왔다 간 흔적이 없다. 그남자가 안나타났다고 관리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담날 출근하려는데 이남자가 나타났다.
문고치러 왔다고.. (아니, 타일을 고르게 다시 붙여야 거기에 문을 달수가 있지 문만 고친다고 돼?)
잠시 후 관리인이 올라오더니 그 젊은남자더러 “왜 너가 또왔어?” 그러고선 이남자가 하는일을 바로 앞에 욕조에 앉아 휘파람 불며 지켜만 본다. 그때부터 쩔쩔매는 그 남자. 아마 이날 관리인에게 잘 못보이면 짤리겠구나 싶었다.

관리인에게 잘 부탁하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도 이거 생각뿐..겨우 6시까지 참았다가 재빨리 집으로 날아왔더니…
결국엔 타일도 다시 붙이고 샤워문도 고쳐놨더군. 진작에 그렇게 할것이지.
이렇게.

3일작업이 5일로 늘어나고 그후 몇일간 샤워를 쓰지말라는 말에 우리의 욕조신세는 딱 일주일.
오늘 첨으로 새 샤워에서 샤워를 할수가 있었다.
우리가 평소때 당연시 하던 샤워가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던지…

낡은 뉴욕아파트 살면서 부엌바닥에 구멍이 나질 않나…별의 별일들을 다 겪는다.

 

 

14 Comments

  1. 신은주 · April 15, 2006 Reply

    혜원님 저두 배부를때 까지 머리감는일이 어려울줄 몰랐다는거 아닙니까……ㅎㅎㅎㅎ
    애기 낳기 전에 지저분하고 복잡한일 저절로 해결 됬네요~~~

  2. colajuice · April 15, 2006 Reply

    글 읽어내려가면서, 사진 보면서, 오마나 오마나 소리가 절로나오네요. ㅠ.ㅠ 아파트 사무실에서 렌트비 얼마 빼줘야하는거 아녀요? @.@
    고생많으셨네요..토닥토닥…

  3. 엄마 · April 15, 2006 Reply

    참으로 애 많이썼네. 집 수리 하는것이 새 집 짓기 보다 어렵다 —는 경험자들의 말. 그러나 기막힌 수고가 있었기에 부서져있던 하수구가 깨끗, 새것이됐네요. 그나 저나, 애기 목욕은 어디서? 어떻게? 욕실 바닥에 물 마구 내려가는 한국 욕실이 참! 편리한데 —–.—. 참!! 애썼다. 그 많은 먼지들과의 싸움, 승리. 깨끗한 부엌, 욕실함께, Happy Birthday, Hae Won.

  4. 주영이 · April 15, 2006 Reply

    대공사를 치뤘구나? 고생많이 했어. 토닥토닥. 주물주물~~
    예전엔 어땠는지 몰라도 깨끗하고 좋아보여. 수고했어.

  5. Helen · April 15, 2006 Reply

    쫌 귀찮고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신생아일때, 공사를 했다면, 그 먼지…. 너무 무서워요. 다 이렇게 저렇게…
    준비가 착착 되네요. 이제 쫌… 쉬세요.

  6. stella · April 15, 2006 Reply

    하하..내 얘기같이 공감하면서 읽었다..나도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와서 날짜가 급해서 일단 이사하고 카펫을 마루로 까는 공사를 살면서 에디와 했는데..공사는 초 스피드로 3일만에 끝났는데..그날 이후 아직까지 미세 먼지와 몸살로 비실비실 앓고 있다..에디의 천식이 더 심해져..화가 더 난다..나도 그때 생각한게 어떻게든 우겨서 공사하고 이사올껄 무식해서 용감했지..ㅋㅋㅋ

  7. 지은경 · April 15, 2006 Reply

    언니~ 며칠동안 샤워를 제대로 못하셔서 불편하고 힘드시긴 했겠지만~ 새로 공사하고 나서 넘넘 상큼하고 시원하시겠어요~ 제가 막 개운해지는 느낌~~ ^^*

  8. 최정은 · April 16, 2006 Reply

    아가씨 애 많이 쓰고 있구나. 고생이 많은 만큼 더 큰 기쁨이 있을꺼야. 욕실은 새집인데.ㅋㅋ
    애기 빨리 보고 싶다. 엄마아빠 닮아서 정말 귀여울 꺼야.
    나도 지나고 나니깐 말이야 집은 정말 우리 맘대로 되는게 아닌것 같아. 정말 젤로 좋은때에 좋은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꺼야. 우리가 어찌 알겟수. 그 분의 위대한 뜻을… ㅋㅋㅋ 맛난것 많이먹고 좋은것 많이보고 많이 돌아다녀.. 얼마 안있으면 돌아다니지도 못하거든

  9. jae · April 17, 2006 Reply

    혜원님 샤워공사 스토리를 들으니 기승전결에, 조마조마…^^
    결과가 좋아서도 그렇지만 재밌었어요~호호
    전 또 밑에 사진이 공사가 잘못된 잘못된 사진인 줄 알고,
    어, 좋아보이는데? 했다는 거 아닙니까…^^;
    너무너무 홀가분하고 시원하시겠어요~
    일하는 사람이 대강대강 일하면 진짜 열받죠~~

  10. april3 · April 17, 2006 Reply

    아이고…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새 샤워를 얻으신걸로 위안을 삼으셔야겠네요. 낡은 뉴욕아파트들… 저희도 윗층에서 물이 새질 않나, 아래층에서 물이 샌다고 욕조공사를 하지 않나….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답니다. 3년을 살고보니 여지저기 낡고 손때묻은 부분들이 눈에 띄고… 그래서 이사를 결심했죠. 앞으로 아가 낳으실때까지는 아무일없이 무사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11. 홍신애 · April 17, 2006 Reply

    그러게요… 이제 공사고 뭐고 그냥 편안히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 되었다니 진짜 얼마나 다행인거에요.^^ 이제 맘 편히 먹고 이쁜 아기 볼날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요! 홧팅!

  12. 혜원 · April 17, 2006 Reply

    지나고 나니 고생한 보람은 있다 싶구요, 그래도 지금 이런일이 일어나 다행이란 생각도 해요. 이젠 가구 옮길일들만 남았는데 전 열심히 스케치만 해놓고 남편친구 불러서 도와달라 할라구요. 참 네, 정해진 공간에서 다 뒤집어놓고 정리를 할려니 끝이 없네요.

  13. 손민영 · April 20, 2006 Reply

    아휴…샤워가 깔끔해졌구나. 너무 개운하겠다.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공짜로 저렇게 해주다니 그게 어디냐~~

  14. 혜원 · April 21, 2006 Reply

    근데 요 몇일째 물이 새서 (문밖에 물이 고여있어) 문도 다시 달아달라 해서 또 왔었고…다시 달았는데도 고쳐지지가 않아서 어제밤에 자세히 보니 타일 사이에 구멍이 났더라고. ㅠㅠ 왕짜증~ 그래서 이 구멍은 남편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있다. 내집 아닌데 이짓 하려니 오히려 돈을 받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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