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눈은 떴지만 몸이 일어나지질 않아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승연이 학교 보낸 후에 집에서 잠이라도 보충하려고 회사에 씩데이를 냈다.

승연이를 깨워야하는 8시까지 옆에서 누워있다가 세수만 대충하고 머리에 물바르고 상을 차리고 식빵을 토스터에 넣어두고 승연이를 깨웠다.

승연이가 눈을 뜨자마자 엄마 오늘 회사 안가고 승연이랑 놀꺼라고 잠도 덜깬 아이 앞에서 한바탕 춤을 춰주고 세수 시키고 옷 입히고 상앞에 앉혔다.

나가기 전에 립스틱은 발라줘야할거 같아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바름. 바지만 청바지로 갈아입고 잠옷 위에 자켓을 두르고 승연이 학교엘 갔다.

그날따라 다른엄마들도 회사 안가는 엄마를 알아보는건지 엄마들과도 이런저런 얘기, 선생님과도 평소때보다 더 긴얘기를 나눴다. 어찌나 뻣친 머리와 맨얼굴이 신경이 쓰이던지… 승연이에게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얘기를 해두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 혼자 3시간. 달콤한 잠을 잘수 있는 3시간인데 잠은 안오고 집안일들이 생각나 30분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데리러갈땐 좀 더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어 샤워를 했다. 샤워실 청소를 하는김에 화장실 청소를 구석구석 다 했다. 창틀도 닦고, 선인장 물도 주고, 양치컵도 씻고, 승연이 칫솔집도 씻고 등등… 하고 있으니 해가 난다.

깨끗해진 화장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아 창문을 활짝열고 블라인드도 다 걷어버렸다. 이렇게 안하면 화장실은 햇살 한번 못보고 일년이 가는거 같다.

마루에 널린 장난감 정리하고, 평소에 거슬렸던 종이조각들 다 버리고, 쓰레기 다 버리고 냉장고 서랍도 하나 꺼내 깨끗히 씻고 하다보니 승연이 데리러 갈 시간이 되어간다. 점심을 위해 밥을 꽂아두고 야채를 다졌다.

깨끗한 모습으로 승연이를 데리러 갔다. 몇분 일찍 갔더니 엄마들이 교실밖에서 기다린다.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자마자 좁은 문으로 엄마들이 줄을 지어 들어가는데 난 젤 끝에서 까치발을 하고 교실안 승연이를 찾아보니 승연이가 문쪽을 아주 희망찬(?) 표정으로 살피고 있다. 엄마가 온다고 해서 그런건지 평소때도 그렇게 할머니를 기다리는지…
그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난 펄쩍펄쩍 뛰어서 승연이에게 내얼굴을 보인다. -_-;; (쓰고 보니 완전 이산가족…) 날 본 승연이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내가 교실을 들어가는 순간 “마미!” 하면서 달려왔다.
선생님과 얘기하는데 계속 내 다리를 안고 손을 끄는 승연이답지 않은 행동까지…

집에 와서 평소 시간걸려 잘 안해주는 -.-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사실은 내가 먹고싶어서 (요즘은 케찹을 사랑한다.)

오랜만에 베이킹을 했다. 잘게 채썬 치즈를 사랑하는 승연이.

치즈쿠키를 만드는 중.

모양 찍어내는 임무를 맡은 승연.

오븐에서 구워낸 다음 식을 동안 우리 둘은 침대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에 아빠를 만나러 나갔다. 아빠한테 저녁 한번 얻어먹어보려고 이 먼길을…
저녁만 먹고 들어올 생각으로 유모차 없이 갔는데 다음부턴 하루종일 나가있을 일 아니면 이렇게 데리고 다닐수 있을거 같다.

한달에 하루라도 이런날이 있었음 좋겠다.
둘째가 생겨서 그런지 요즘 승연이랑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29 Comments

  1. joan · October 12, 2009 Reply

    혜원님 부지런하심에 감탄하고(반짝반짝 윤이나는 화장실), 승연이와의 상봉에선 눈물이 핑돌고.. 오므라이스사진에선 군침이… 아빠만나서 같이 저녁먹는 이쁜가족이 눈에 보이는듯 하네요. 덩달아 행복합니다.

  2. 이진 · October 12, 2009 Reply

    아~웅 이쁜 승연이!!!!!!!!!!!!!!!!
    그새 또 자랐어여~~
    전업주부되심 맨날맨날 승연이와
    므흣한 만남을 즐기실수 있을텐데…..^^

  3. jae · October 12, 2009 Reply

    읽는 동안 눈물이 글썽글썽…ㅜㅜ
    너무 예쁜 승연이…너무나도 부지런한 엄마…^^
    보통 둘째 가지면 몸 힘들다고 아이한테 소홀한데 혜원님은 더 사랑해주시니 정말 난 분이신 것 같아요…^^;

  4. 이지혜 · October 12, 2009 Reply

    어머나, 승연이 얼굴이 바뀌었네요…
    이제 분위기 있는 언니 얼굴이 됐어요. ^^
    승연이, 엄마가 와서 기뻐서 그랬을 거에요..
    저희 아이도 그랬거든요… 지금은 엄마가 데리러 오면 당연한 거고 아빠까지 가면 아주 신나요~~~ ^^

  5. seonjin · October 12, 2009 Reply

    혜원님의 그 긍정적인 에너지의 원천을 알게 해주는 글같아요.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저요저!!) 왜그렇게 혜원님의 일상을 엿보기를 그렇게 기다리는지 알것 같네요. 행복이 떨어지길 기다리는게 아니라 create하는 분이세요.정말..

  6. 글라라 · October 12, 2009 Reply

    글을 읽으면서 제 생활을 반성해봅니다.. 입덧때문에 나몰라라 투정만 부리고 주변사람들만 힘들게 했었는데.. 지금 애키우면서도 맨날 힘들다고 짜증내고.. 게으르고 다부지지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되네요..

  7. 조현숙 · October 12, 2009 Reply

    물 밀듯 밀려드는 후회의 세월…. 우리 딸이 어렸을때 혜원씨 같은 정서적 안정을 가지지 못했는데…. 축복을 많이 받은 분이시네요

  8. 목요일오후 · October 12, 2009 Reply

    아.. 정말 너무 행복한 하루셨겠어요.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그 설레임에 승연이는 학교마치는 시간만 계속 기다리고 있었겠네요. 음 찡하다.
    요새 길모어걸즈도 다시보고 하는데 승연이랑 혜원님도 저의 딸 로망에 한몫해주시네요^^
    근데 승연이 얼굴에서 언뜻 외할머니를 닮은 구석이 보여요~ 그리고 젖살이 좀 빠졌나 훌쩍 큰 거 같아요

  9. 김주연 · October 12, 2009 Reply

    승연이가 부쩍 커진 느낌이예요..볼이 오동통..귀여워라..

  10. 조조 · October 12, 2009 Reply

    마미~ 장면에서 괜히 저도 눈물이 핑. 우리 엄마도 그런 얘기 아직도 하시거든요. 예쁜 승연이랑 또 예쁜 혜원씨가 사는 이야기, 너무 따뜻하고 좋아요!!

  11. 워너비 · October 13, 2009 Reply

    반짝반짝한 화장실에 감탄하고, 승연이랑 베이킹까지 한 사진에 또한번 감탄하고 갑니다. 전 참 게으르게 사는 듯 -_-;

  12. Jaehee · October 13, 2009 Reply

    아~ 맘이 넘 따뜻해 져요..혜원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참 저위 사진에 나와있는 스마일 이쁜 스푼은 어디서 사셨나요? 별걸 다 묻지요? 밥 잘안먹는 우리 딸이 저걸 주면 혹시 좀 나을까 싶네요..^^;; 어쩜 그릇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혜원님의 센스가 넘 부러울 뿐입니다….

  13. 리아맘 · October 13, 2009 Reply

    눈물 난다.
    리아도 날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겠지.
    요즘 나 힘들다는 이유로 애 엄청 잡았는데..

  14. Misty · October 13, 2009 Reply

    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아요 (사무실인디 흐미 … ㅎㅎㅎ).
    승연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엄마를 보고 넘 반가워하는 승연이가 사랑스럽고 그러네요. 저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혜원님처럼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

  15. mina chong · October 13, 2009 Reply

    임신 중이시고 게다가 몸도 안좋으신 날인데 정말 많은 일을 하시는군요. 화장실은 완벽하게 반짝반짝하고… 청소, 점심만들기, 아이 데리고 베이킹, 외출까지… 존경스러워요.

  16. Diane · October 13, 2009 Reply

    혜원님네 화장실타일들 언제나 봐도 너무나 맘에 쏙드네요~
    창가에 올려진 네모접시위에 올려진 선인장, 시계와 꽃병이 산뜻함을 더해주면서 너무나 잘어울려요!
    저도 집사면 죠렇게 산뜻하게 꾸미고 살아야할터인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

  17. kwon hyunjung · October 13, 2009 Reply

    승연이가 요즘 부쩍 큰아이 처럼 보이내요. 지금 혜원님의 일상들이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18년전으로 제 모습과 똑같아 만감이 교차 하네요. 이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나봐요. 이제 입덧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좋은 가을을 만끽하시고 승연이 가족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18. 혜원 · October 13, 2009 Reply

    저도 승연이 픽업갔을때의 표정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나요. 난 제 호르몬때문에 요즘 눈물이 많아진줄 알았는데 (요즘 무슨 얘기만 하면 눈물 핑..-.,-) 아닌가봐요?
    Jaehee님, 저 스푼은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산건데요, 젓가락 포크까지 같은 디자인이 있어요. 달랑 하나만 사온게 후회되네요. 가격도 넘 착했는데.. 미국엔 아이용 숫가락 포크등이 다 너무 투박해서 참 맘에 드는거 찾기가 어렵더라구요.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19. 윤희정 · October 13, 2009 Reply

    엉엉… 제가 삼일에 걸쳐 할일을 하루에 다하시고, 중간에 승연 픽업과 낮잠까지…ㅡㅡ;;
    약간 좌절입니다. ^^

  20. 유나 박 · October 13, 2009 Reply

    저 눈물나요.
    어릴적 엄마 기다릴떄 생각나선가..

    근데,넘 대단하세요. 윗 분 말씀처럼 제가 일주일에도 다 못하는 일을 하루에 하셨네요.^0^

  21. 김희경 · October 13, 2009 Reply

    저도 눈물 핑 돌며 읽었네요..아울러 승연이와의 데이트 자주하세요~^^

  22. Amy · October 14, 2009 Reply

    지금 바로 화장실 청소해야겠어요 ㅋㅋ 혜원님 화장실 넘깨끗해요~ 화장실 시계가 제 책상시계랑 같아서 엇!!했답니다 ㅋㅋ 저 시계 심플하고 소리안나서 제가 애지중지하는 시계여요

  23. 이지인 · October 14, 2009 Reply

    혜원님, 글이 너무 아름다워요^.^ 승연이가 엄마 기다리는 맘을 알거 같기도 하고고, 그 모습을 보는 혜원님 모습에 눈물이 찡하네요. 치즈 주어먹는 모습 보니까 승연이 얼굴에서 반짝반짝한 기운이 묻어나네요. 넘넘 이뻐라^^ 세상에 화장실도 넘넘 깨끗하고 오므라이스도 군침돌아요!

  24. 캐롤 · October 14, 2009 Reply

    저는 전업맘인데도 혜원님 눈물이 핑도는 대목에서 저도 눈물이 나네요.
    우리가 아이들 이런 마음으로 키우는거 아이들이 언젠간 알겠죠……………..

  25. 김지영 · October 16, 2009 Reply

    몸도 피곤하셨을텐데 어쩜 이리 부지런하신가요.
    둘째 나오기 전에 승연이한테 사랑을 많이 많이 표현해 주세요. 갑자기 우리 큰애 생각에 짠해집니다.

  26. 짜루 · October 16, 2009 Reply

    혜원님…오랫만에 들어왔는데..역시나, 언제나처럼 글속에 행복함이 느껴져요…. 혜원님홈피에 와서 글과 사진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항상 따뜻해져서 너무 좋은거있죠…^^ 아…그리고 승연이도 엄마를 닮아서 눈빛이 참 따뜻하네요.^^

  27. jeehea lim · October 19, 2009 Reply

    혜원님….남들이 말하는 슈퍼맘!! 혜원님을 두고 하는 말이죠?..늘 보면서 반성하고 도전받고…다시 나의 일상으로 또 놀러와서 도전받고 반성하고…..오늘부터는 승연씨…처럼 열심히 엄마 노릇 해야겠어요..혜원님도 그럼 즐태~~~

  28. 미깡 · October 21, 2009 Reply

    언제나 혜원님 화장실 사진 보면 놀라곤해요
    어쩜 이렇게 반짝반짝 깨끗하게+쉬크하게 유지하실 수 있는지 놀라워요 승연이와 남은 둘만의 소중한 시간 즐기실 바랄께요

  29. 한정희 · October 22, 2009 Reply

    정말 혜원님 말씀 공감해요. 맞아요~ 저도 눈물이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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