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일로 하자

지금 회사 다닌지도 1년반이 넘고, 좀 안정이 된다 싶더니 예상치도 않은일이 생겨 괜히 신경만 쓰고 밤잠만 설쳤다. 한달반동안. 어쨋든 맘도 심란하고 머릿속도 복잡하니 그렇게 먹어댔나보다. 내맘대로 되는건 오늘밤엔 뭘 해먹을지 정하는거였으니까.

딱 시애틀로 떠날 그 월요일에 출근을 하니 갑자기 우리회사가 미국지사를 닫고 잡지를 모두 팔아버렸단 뉴스를 직원들에게 알렸다. 아니, 소문이 돈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웬 뚱딴지같은 소리? 여성잡지들은 이미 다른 회사에 팔렸고 내가 속해있는 잡지 둘은 아직 누가 살지 모른다는거였다. 아니, 이건 더 심하잖아? 여성잡지 소속 직원들은 여기보다 더 많은잡지를 소유하고있는 출판사로 넘어가는거니 신날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한달뒤에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거였다.

정말 미치는줄 알았다. 물론 살아남을 여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이 손에 잡히는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월급은 받고있는데 일을 아예 안할수도 없고..
당장 먼지 폴폴 나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머리에 번떡 떠오르더니 빨랑 준비를 해둬야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하필 디자이너는 되가지고 귀찮게 포트폴리오도 항상 업뎃시켜놔야되는건지…ㅠㅠ

일주일이 지나자 슬슬 잡지계에서는 거인이라고 불려지는 회사에서부터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는 회사들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또 두주가 지나자 마지막 톱5만 남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원하는 회사는 다섯개중 찾아볼수가 없었고 점점 더 새직장을 알아봐야겠단 결심이 더 굳어졌다. 솔직히 내가 지금 회사에 붙어있는 이유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여성잡지쪽으로 옮길 생각에였었는데…우리만 뚝 떨어져나가면 좋던싫던 경제잡지만 내내 들여다봐야된다는거 아냐. -.-

이쯤에서 작년에 왜 이 회사를 택했을까 하는 후회도 해보고…다른회사엘 갔었으면 절대 이런일은 없었을텐데…하면서도… 그래도 여기서 배운게 다른 회사에서 해야됐을 관심도없는 비됴작업보단 더 가치가 있었지…란 위로도 혼자서 해보고…
다른직장을 알아보다보니 오히려 새출발을 할꺼라는 기대에 이미 마음은 여기서 떠난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원은 해보지도 않고 이미 머릿속으론 인터뷰도 다보고 합격까지 해 다른회사를 다닌다는 착각을 할정도로 꼭 이 회사를 이김에 떠나리라 했었는데. 그넘의 포트폴리오를 끝내지못해 계속 미루고만 있다가 한군데도 보내보지도 못하고 이미 결론은 나버렸다.

결론이 어떻든간에 난 간다! 이랬었는데..
막상 일이 꽤 괜찮게 되어버린거다. 어떤 돈많은 (빌리어네어라지.) 개인투자자에게로 넘어갔다고. 그러니까 잡지들이 출판사에게서 떨어져나가 독립하는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부분은 오히려 이런일들이 있으면 직원수를 줄이는게 상식인데 이사람은 일단 돈도 많고 우리잡지를 믿다보니 첨부터 팍팍 밀어준다는거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을 더 뽑는다는군. 그럼 내게는 더 유리해지는거고.

이미 마음은 새직장으로 가버렸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간사한건지. 그래서 정신적으로 정말 갈팡질팡했던 한달반이었다. 아직도 선택된 새 길이 썩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나의 커리어에 유리하단점을 보고 머물기로 한다는 그 자체도 너무 나답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다 “무서운” 사회생활이 아닌가 싶다. 난 그 “무서운” 사회인이고. ㅠㅠ
좋은 결정을 하는거겠지만 괜히 나도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게 씁쓸해진다.
그래서 요리가 어느정도 발란스를 맞춰주는거이기도…

지난주말 시골에서 본 약간은 시시했던 불꽃놀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17 Comments

  1. 솜2 · July 8, 2005 Reply

    혜원씨 얼굴에서 한달반동안 심란했던 것들을 불꽃놀이를 보면서 다 씻어버린듯하네요…^^
    그래도 가끔은 그런 무서운 사회인이 되는것을 한번씩 느껴야 새로운 무서운 사회에 적응할수 있는게 아니겠어요?
    (전 사회인도 아니면서 이런 소리 하니 웃기네요…ㅋㅋㅋ)

  2. joy · July 8, 2005 Reply

    그 새 그런일이 있었군요. 아뉘 근데 갈수록 날씬해지는 비결이~~~ 팔이 느무 얇잖아요. 각이 팍팍지네요 ^ㅇ^

  3. inhee · July 8, 2005 Reply

    언니 힘내,, 언니가 얘기한것처럼 그동안 100% 아니 그이상으로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었던게 행운이었던거고, 이제부턴 그냥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그속에서 보람도 찾고 가끔 기쁜일도 생기고 맘에 안드는 일도 있고 뭐 그러면서 화려한 레주메를 만들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나는 앞으로 정말 즐거운 일보다는 challenging하면서도 그냥 정상적인 시간으로 일할 수 있고, 내 목소리 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또 한 5년이 지나면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힘내자구요!!

  4. 앤지 · July 8, 2005 Reply

    어찌 생각하면 간사한 것 같아도 그리 되더라구요. 어쨌던 새 직장이나 다름 없다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맘으로 다닐 순 있겠는데요.

  5. klimt · July 9, 2005 Reply

    이론이론~~ 별일이 있었네… 힘내라,
    새옹지마라잖니… 또 얼마안 있음 다른 서프라이즈가 있을거야~~~ 힘내라~

  6. 서정숙 · July 9, 2005 Reply

    저도 지금 다니는 직장이 2년전 직원을 반으로 줄이고 업무형태도 약간 다른 모습으로 바뀔 때, 참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이라고 서로 살아남으려고 반목할 때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런 인간들의 참(?) 모습이 가끔 생각날 때면 지금도 팔에 소름이 끼친답니다. 마음을 비운 탓인지 그 와중에 생존해 나가고 있지만 참 월급쟁이의 비애는 책을 써도 전집으로 써야 할 꺼애요. 사람 사는 세상이 더 각박해 진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더 힘든 일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기쁜일도 많이 있겠지만 정말로 모든 것이 내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답니다. 바위 같이 굳건한 나에 대한 믿음을 갖고 무슨 일이든지 힘내서 장글을 뚫고 지나가야죠. 힘 내세요. 아 ~ 자 ^-^

  7. 혜원 · July 9, 2005 Reply

    솜2님 맞는말씀이에요. 적응하다보면 다 독해지는법이라는군요. 흑
    조이님 밤이라서 그렇게 보이는거에요. ㅠㅠ
    인희야 나도 이젠 재미보다 편안함을 오히려 추구하는거 같더라. 정상적인시간에 칼퇴근하는 편안함. ㅋㅋ 그래도 지나고나니 홀가분하다.
    앤지님 그렇게 맘먹기로했어요.^^
    kilmt언니 고마워요
    서정숙님, 아 정말 그렇더라구요. 비굴한사람들도 많이 보고.. 암튼 자신의 맘먹기가 현실의 반이상은 좌우하는것 같아요.

  8. Foxhead · July 10, 2005 Reply

    고생했네~ 머 앞날은 누구도 알수 없는거지.. ㅋㅋㅋ
    암턴.. 좋게 마무리 되어서 다행이다. 크크
    잘지내구 있어야해~ ㅋㅋ

  9. 리아맘 · July 10, 2005 Reply

    아이구 혜원.. 그간 맘 고생 심하게 했겠다.. 난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인데.. 몇달 쉬었다고 벌써 더 겁이 나고 무서워진다.. 리아랑 그냥 노는게 더 좋은데 말야..
    그래두.. 잘 풀렸다니까 다행이야. 힘내라 힘!

  10. 앤드 · July 10, 2005 Reply

    혜원님 맘고생 많으셧네요.
    진짜 적응하다보니..어느덧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엿나..싶은 생각 수시로 들어요.-_-

    기운내시고~ 홧팅하셔요.^^

  11. 손민영 · July 11, 2005 Reply

    한번 뜬 마음을 접는다는것이 참 어려운 일이더라. 장혜원 하여간 화이팅이야! 저 사진 넘 예쁘게 나왔다. 팔뚝좀 봐…내꺼 반이야…-.-

  12. 혜원 · July 11, 2005 Reply

    Foxhead, 오랜만이네~ 그러게. 너두 잘지내라~ 조만간 싸이 한바퀴 돌겠음.
    송이야, 벌써 찾아보는거야? 한번 부딪혀보면 그래도 겁이 좀 사라질꺼야. 괜히 내눈앞에 안보이니 걱정이 더 쌓이는거 같더라고. 화이팅~
    앤드님, 저 벌써 기운 다 돌아왔어요^^ 고맙습니다.
    민영, 그래, 그넘의 맘이란게 내맘대로 안되더라고. 내맘이 내말을 안들어. 저 사진. 땀으로 번질거리는게 추해서 흑백으로 바꿔버렸단거 아냐. -.-

  13. 정소영 · July 11, 2005 Reply

    일이 잘 해결되서 정말 다행이당… 추카! ^^

  14. goindol · July 11, 2005 Reply

    어차피 평생직장…느긋하게 생각하시구요~
    멋진 혜원씨의회사생활 기원해요!

  15. 혜준 · July 13, 2005 Reply

    이글의 어느 한 부분이 나의 마음을 자극하네. 아주 찐하게.. 후.. 근데 나도 우선은 제자리다. 마음을 비워야 편하겠지, 당분간은…

  16. 홍신애 · July 13, 2005 Reply

    아… 언니 그런일들이 있었군요…. 전 정식으로 직장이란데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인지라 솔직히 뭔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맘이 많이 혼란스러웠으리란 짐작은 가네요… 하여튼 언니는 잘 해내리라 믿어요. 화이팅~~^^* 그리고 마지막 사진 너무너무 보기 좋네요^^

  17. 박정은 · July 21, 2005 Reply

    휴가를 제가 너무 길게 갔다왔나봐요
    이런 일들이 있으셨군요…첫줄을 읽을땐 다른 사람 얘긴줄 알았어요 근데 밑으로 내려가면서….음…
    하지만 일이 잘 되셨다니 정말 잘됐어요

    앞으로도 화이팅~~

    그리고 이 무더위가 빨리 가셨으면 좋겠네요
    혜원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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