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 On Family Time + Crème Brûlée

저녁 식사 후엔 가족이 티비앞에서 과일을 먹는 코스가 필수였던 나의 어린시절.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함께 살던 친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복싱(그땐 권투라고 부름)을 보며 대체 왜 저런걸 하는걸까 의아해했던 기억이나, 할머니의 “잘한다, 잘한다” 응원가 –_-;, 엄마의 과일깎는 모습, 또는 과일 한 조각 들고 트리앞에 앉아 걸려있던 오너먼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기억들이 또렷히 남아있는걸 보면 내겐 그 시간들이 참 좋았나보다.

그때는 배가 터질것 같아 디저트를 도저히 못먹겠더라도 가족이라면 함께 앉아있기라도 했어야 하던게 짜증이 났던 적도 있었고, 왜 우리가족은 남들처럼 좀 쿨하지 못한건지, 닫힌 방에서 개인시간이 아주 많았던 내 친구들과 비교도 하며 슬퍼했던 적도 있다.

개인주의가 일상이 되어버린 디지털시대에 살면서 아이들과 마주보고 앉아 뭔가를 함께 하는 루틴 (비록 함께 티비를 보더라도)은 점점 더 사라져만 가고 이건 전적으로 부모책임이라고 볼때 난 아침 저녁 두끼를 함께 앉아 먹는것 더하기 또 뭔가가 필요하다는걸 느낀다. 그리고 애들이 더 커서 자기주장과 불평을 하기 전에 일찌감치 시작을 해야한다는것 또한.

이런 깨달음등이 그냥 온것은 아니고, 애들이 던지는 한마디들이 어느 순간 떠올라 (주로 지하철에서) 그들의 말뒤에 숨겨진 진실된 느낌같은것들이 내게로 전해져오면서 우린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것 같다.

어떤 가족은 패밀리 게임나잇도 있고 무비나잇도 있지만 그건 처음부터 너무 야심찬것 같고, 일단 우린 패밀리 티비나잇으로 시작했다. 거창한건 전혀 아니고 그냥 일주일 한번 (주말 밤) 온가족이 하나의 티비프로를 시청하는것. 애들 우리말도 배울겸… 케이팝스타 ㅋㅋㅋㅋㅋ

나에겐 이렇게 가만히 앉아 티비를 보는 자체가 정말 오랜만이다. 몇년만?

지난번 올렸던 승빈이의 몇마디에 이어, 승연이의 행동과 말들이 또 나를 놀라게 했다.

이번 연휴때 둘이 거실에서 레고를 하고 있는데 부엌에 물을 얹어놓고 잠시 애들과 함께 앉았다.
승연이가… 아니, 엄마가 진짜 자기들과 함께 레고를 하는것인가 라는 믿을수 없단 표정으로 “엄마, 리얼리???” 이러는거다. =.,=;; (내가 평소때 대체 어땠길래)
진짜 별거 아닌거였는데 애들이 둘다 막 흥분을 하면서 내게 이것저것을 막 시키고, 물어보고 등등을 계속하다가 물이 끓자 다시 일어나는 나를 붙잡으면서 조금만 더 있으라고… ㅠㅠ
아냐, 얘들아. 점심 시간이야, 엄마 배고파! 하면서 난 일어나고. ㅠㅠ

요즘 승빈이가 매일 하는 표현이 있다.

저녁으로 닭을 먹고 있으면 We’re a chicken family, right? 이러고
파스타를 먹으면 We’re a pasta family, right? 이러고
밥을 먹으면 We’re a rice family, right? 이러고
국수는 We’re a noodle family, right?
아이스크림은 We’re an ice cream family, right?

그순간에는 Yes라고 대답을 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며칠전에 든 생각은, 얘한테는 우리가 가족단위로 다함께 같은걸 먹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은가… 라는거.

새해가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는건지 몰라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더 확실해지는건 우리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아주 어렸을때부터 형성된다는것. 지금까지 생존위주의 육아였다면 이제는 일년정도 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인격형성 위주의 육아로 넘어가는 길에 서있다. 이상하게도 승빈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했을법한 이런 고민을 승연이가 네살이 되도록 전혀 했던 기억이 없다는것.

많은 깨달음이 있었던 작년에 이어 올해는 많은것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걸로 최대 노력하려 한다.

이렇게 쓰면서도 지난 티비타임때 시끄러운 애들때문에 노래가 안들린다고 “너네 이런식으로 볼꺼면 다음부터 티비타임 없어!!!” 라고 막 소리지른 나자신 급반성 중.

그런 의미에서 그때 먹었던 크렘 브룰레 올려봄. 낮에 만들어뒀다가 먹기 직전 설탕 뿌려 브로일러에서 캔디화 시켜버림.
cremebrulee1

Joy of Cooking 레시피 (아래 분량을 반으로 줄이니 사진에 보이는 미니 래미킨 네개 나옴)

재료:

2 cups 헤비 크림 (휘핑크림)
달걀 4개 OR 달걀 노른자 8개
1/2 cup 설탕
3/4 tsp 바닐라액

오븐 325도로 예열 하고 물을 부어 steam bath 가능한 좀 깊은 베이킹팬 준비

  1. 작은 냄비에 헤비 크림을 겨우 끓을정도로만 끓인다.
  2. 믹싱볼에 달걀과 설탕, 바닐라액을 주걱으로 섞는다.
  3. 주걱을 저으며 2번에 뜨거운 크림을 아주 천천히 부어준다. (한꺼번에 다 섞으면 달걀이 익음!)
  4. 준비된 용기에 위의 반죽을 나눠 붓고 팬에 넣은 후 뜨거운 물을 용기 주위로 팬에 부어준다. 스팀 효과를 위해.
  5. 30분 정도 굽는다. 살짝 흔들었을때 찰랑거리지 않을때까지.
  6. 다 구워지면 냉장고에서 적어도 세시간정도 넣어 식힘 (레시피상, 8시간인데 세시간도 괜찮았음)
  7. 먹기 직전에 설탕을 원하는만큼 골고루 뿌린 다음 브로일러 아래서 5분정도 브라운 시킨다.

cremebrulee2

크렘브룰레 torch를 사던게 해야지, 너무 탔다.

승연이는 좋아하는데 승빈이는 안먹더군.
바삭하게 캔디화된 설탕을 깨고 크리미한 커스터드와 한스푼 떠먹기… 케이팝스타를 보며…

 

 

10 Comments

  1. Amy · January 10, 2014 Reply

    이 글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따뜻해졌어요. 저도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어요. 디테일한 건 안떠오르지만 엄마아빠동생들과 모여 따뜻한 바닥에서 이불덮고 귤까먹던 추억들, 정원에 풀장설치해서 놀던 기억들..어제 동생과 통화하며 어릴 때 아이에 미치는 부모의 영향에 대해 엄청 열변을 토했는데 혜원님이 딱 글올리셔서 글이 길어졌네요 ㅋㅋ 저도 아기낳으면 맘처럼 쉽지는 않겠죠? 버럭해놓고 후회하고 ㅠㅠ 승연 승빈이에게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은가봐요. ㅎ

    • 퍼플혜원 · January 13, 2014 Reply

      맞아요 귤까먹는거 ㅎㅎㅎ ㅠㅠㅠ 그때 엄마아빠가 하셨던 말들이 가끔 뜬금없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요. 늙나봐요. ㅠㅠ
      아이가 없으신데도 부모의 영행에 대해 열변을 토하실 정도면 엄마가 되면 넘 잘하실거에요~

  2. Clara · January 10, 2014 Reply

    그 야심찬 가족 여기 있습니닷!! 팝콘과 안락한 소파가 기다리는 패밀리 무비나잇 시도했다가..선택 하는 영화마다 무섭다고 난리난리!!! 한 20분도 제대로 본 영화가 없으니 말 다했죠…ㅋㅋ (나중에는 뽀로로도 못보는 처지가 됐어요…거기 나오는 상어 무섭다고;;)
    그래서 저희도 몇주 전 부터 티비나잇으로 바꿨답니다. 프로그램 제목은 (원래 아빠 어디가였는데…그건 끊고요) ‘수퍼맨이 돌아왔다’…나잇대 별로 애들이 나와서 어렸을적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아직 딱 한번 했지만…볼링 나잇도…하기로 했어요.
    애들은 거창한거 없어도, 함께 한다는것에 무지 큰 의미를 두더라구요…내내 기억하면서 이야기도 하구요..
    멋진 음식까지 곁들이셨으니 승연이랑 승빈이 기억에 한획을 그으셨네요 (승빈이가 왜 저리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걸 안먹었을까요?).

    • 퍼플혜원 · January 13, 2014 Reply

      ㅋㅋㅋ 뽀로로 상어 무섭.. 왜케 웃겨요 정말.
      승빈이도 겁 많은데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 수퍼맨이 돌아왔다도 리얼리티쇼인가요? 우연히 승연이에게 런닝맨을 보여줬는데 좋아해서 신기했어요. 교육적이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우리말 접하라는.. -.-

  3. Hana · January 10, 2014 Reply

    가끔 혜원씨가 저의 클론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란 어린환경마저 비슷했네요.
    제가 아이 둘이 커가면서 직장생활하면서 이게 뭔가 그러면서 패밀리 나이트 같은 거 시도한 것도 비슷하구요. 아이들이 승연이랑 승빈이보다 조금 더 크니까, 자연스럽게 루틴이 더 장착이 되긴 하더라구요. 엄마의 노력이 더 필요한데 직장 생활하면서 밸런스 아닌 밸런스를 맞춘다는 게 마음만 급하고 힘든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혜원씨 화이팅.

    • 퍼플혜원 · January 13, 2014 Reply

      감사합니다. 지금 시작하면 몇년 지나면 저희도 루틴이 정착이 되겠죠? 밸런스 힘드네요 ㅠㅠ

  4. Peanut · January 11, 2014 Reply

    저도 어렸을적에 가족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다시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요즘이에요. 저희는 또 완전 대가족이었거든요. 친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시집장가 안갔던 고모 삼촌들까지요. 그때는 정말 시끌벅적 이었어요. 한참 중고딩때 민감한 시기에는 고모와 삼촌이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해도 언니와 오빠가 있다보니 내 방도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티비를 같이 쉐어해서 보는것도 막 짜증나도 그랬어요.ㅜ.ㅜ 참 철없던 시간이었는데… 돌아보고 이렇게 결혼해서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그때만큼 소중한 시간들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저도 엄마가 늘 일을 하셔서 어렸을때는 엄마와 한께 한 시간 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한 시간들이 더 많았어요.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삐져서 토라진적도 많은데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엄마나름대로 우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승연이와 승빈이도 아마 그럴것이라 생각돼요. 언니의 노력하는 그 마음 그 모습에 전 엄마가 생각나서 울컥해지네요..^^ 언니 화이팅 하세요!!

    • 퍼플혜원 · January 13, 2014 Reply

      @.@ 완전 대가족이네요, 요즘 보기 드문.
      멀리 살아 더 이런게 그리운게 아닌가 싶은데 승연이 커가는걸 보니까 조금있으면 이넘 대학간다고 생각하니 막 마음이 조급해지는게.. ㅠㅠ 가족시간이 지금당장 필요하더라구요.

  5. halcyon · January 19, 2014 Reply

    승빈이 말이 진짜 짠하네요~저도 어릴 때 어른이 되지 말고 그냥 우리 가족 이렇게 평생 살면 안되나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ㅎㅎ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사람들이 자라지 않도록 머리 위에 다리미를 올려놓자는 말에 폭풍 공감하면서요ㅋㅋ

    • 퍼플혜원 · January 21, 2014 Reply

      어머 기억력도 좋으세요. 작은 아씨들에서 조 ㅋㅋㅋ 완전 백만년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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