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ess

난 정말 인복이 많다. 학창시절때도 난 항상 선생님 복이 있다고 엄마가 그러셨었는데 지금도 난 따뜻하고, 멋지고, 똑똑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는걸 감사하게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걸 당연한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 일이 있고 지금까지 난 무척 이기적인 인간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한번도 베푼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사랑을 아주 넘치도록 받고 있다. 예상치도 못한곳에서 도움이 들어오고 옛 직장동료까지 전화가 오는가 하면 냉장고가 넘쳐나도록 음식이 들어와 우리 가족은 너무너무 잘 먹고 있다. 집에 이렇게 꽃이 많아보기도 처음이고 며칠전에 받은 Edible Arrangement 과일꽂이는 애들이 환장을 해 거의 파티분위기… -_-;; 내 다리 하나 부러지니까 애들이 호강…

회사 팀멤버들이 보낸 케어패키지 속엔 나 지루할까봐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북. 그리고 나를 웃게 만든 The World’s Worst Jokes 책 ㅋㅋㅋ 너무 worst jokes라 오히려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친구가 치맥과 케익을 사 와 우울함을 없애줬고

승빈이는 작년 베프 생일 파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서프라이즈로 받는 Get Well 선물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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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니 다리가 가렵기 시작. 절대 붕대를 풀지 말라고 해서 대체 속에선 잘 아물고는 있는건지 공기소통이 안되니 염증이 생기는건 아닌지 너무 궁금했으나 무서워서 풀어보지는 못하고 은젓가락과 아이스팩으로 가려움을 달랬다. Samantha, the Scratcher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 승연이가 내 손이 닿지 않은곳들은 꼼꼼하게 젓가락으로 긁어줬다 ㅋㅋㅋ

당분간 식탁에도 앉지 못하고 난 따로 다리를 편하게 올릴 수 있는 거실 의자에서 모든 식사를 함. 남편이 이렇게 급식스타일로 담아줌. ㅎㅎ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딸들과 침대에서 뒹굴어보나… 내가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는것도 애들에겐 어떻게 보면 복일수도 있겠다 싶다.

퇴원 후 첫 병원 마실이 있었다. 맞는 바지가 없어서 남편이 통요가 바지를 사왔는데 이것도 결국 옆을 허벅지까지 쫙 찢어야 했음. 검색해보니 그냥 한쪽 다리는 반바지로 잘라 입는게 가장 편하다는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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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으며 별의별 생각도 다 하게 되지만 또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고 별의별 상황을 다 보게 된다. 그저께 수술의를 만나러 갔다. 퇴원할때 PA (Physician’s Assistant)가 설명해줬던 내용과 이날 의사의 말이 너무 차이가 나서 쇼킹.

#1
분명히 퇴원할때는 PA가 뼈가 완전 붙을때까지 8주가 되어야 이 다리에 full weight을 가할 수 있다고 지금은 발가락만 겨우 땅에 닿는걸로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이날 의사가 지금도 두발로 설 수 있다고. 엥??? (그 후에 PT(physical therapist) 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내 뼈의 골절 방향이 가로이기때문일거란다. 만약 세로로 갈라졌다면 딛으면서 뼈가 어긋날수가 있다고… 하지만 난 딱 1층 2층 이런식으로 갈라졌기때문에 가능한걸거라고…) 의사앞에서 두발로 서니 후들후들 거렸지만 통증이 심하진 않았음.

#2
의사가 깁스 풀고 샤워는 하냐고 물었다. 엥??? 절대 깁스 풀지말고 젖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수술부위를 2주동안 확인도 안할 수가 있지? 경악을 했는데…
의사가 일주일 지났으니 붕대 풀고 샤워 가능하다고… -_-;;

#3
항생제 더이상 먹지 말라고. 엥??? 염증 예방을 위해 4주동안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한다고 PA가 그랬었는데? 그래서 난 새벽 2-3시에도 시간맞춰 먹느라 알람 맞춰놓고 약을 챙겨먹었었다. 의사는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그만 먹으라고…

#4
오늘부터 무릎 굽히는 운동 시작하라고. 엥??? 8주 후에 깁스 빼고 나면 그때 운동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의사는 아니라고, 지금 시작해야한다고… 지금 해보자 이럼서 시도해보는데 난 아프다고 소리지르고… 의사가 지금이 이정돈데 8주 후에 시작하면 큰일나지. 이런다. -_-;;

오마이갓. 병원에선 믿을 사람이 의사 간호사밖에 없는데 정말 이런식으로 무심하게 정보를 흘리는게 말이 돼? 이러면서 씩씩거리는데 생각해보니 PT가 얘기했던대로 나의 골절방향이 크게 적용했던것 같다. 세로 골절인 환자들은 정말 8주 후에야 재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회복 스케줄을 내게 알려준것 같다. 아, 정말 세상에 믿을넘 하나도 없다는 말은 이때 쓰는것 같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말도. 병원이란 세상에선 무식이 죄인 만큼 내 병에 대해선 내가 공부해야지 누굴 믿고 어쩌고 하는게 아니란걸 이번에 크게 실감한다.

에니웨이.

그리하여 난 두발을 딛을 수가 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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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딛으면 다시 부러질것 같아 얼마나 조심했었던지. 아직 걷는건 서툴어도 제자리에서 두발 딛고 서있는게 얼마나 큰 업그레이드인지 모른다. 이젠 화장실도 혼자 가는 노련함도 생겼다아!!!

이런 기쁨도 딱 하루.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무릎굽히기 운동 하며 난 펑펑 울었고 “이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과연 예전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걸까 의문스러울 정도로 지금 내 다리 상태는 제로다.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거다. 입으로 난 할 수 있다! 를 여러번 외쳐도… 어렵다. 힘들다. 아프다.
답답함과 속상함이 물밀듯 밀려오며 우울하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무릎수술 선배이신 엄마가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다고 하셨다.

 

 

24 Comments

  1. 노아맘 · February 18, 2016 Reply

    캐나다 의사만 그런줄알았는데 미국도 그러네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면서 절레절레했었던 기억이…
    처음 사진 접했던거보다 많이 나아졌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하루 하루 더 나아 지겠죠? 힘내세요~!! 화이팅~~!!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흔한일이었군요. 저흰 이렇게 병원신세 지는게 처음이라 뭐 이런! 이랬거든요. 사전의 공부와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더라고요. 화이팅 감사합니다 ^^

  2. Kat · February 18, 2016 Reply

    벌써 화장실도 혼자 갈수 있어??? 와우. 며칠 사이에 정말 많이 좋아졌군. 울 혜원이 욕본다 ㅜ.ㅜ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욕본단 말이 정말 알맞는 표현인가보다 ㅠㅠ 그래도 그때 보니 많이 발전했지? ㅋㅋ

  3. ranniberry · February 18, 2016 Reply

    에구구 힘내세요!! 금방 좋아지실 거에요!

  4. junga kim · February 19, 2016 Reply

    여태 봐온 혜원님은 강하니까 잘 해내실 꺼에요. 궁금해서 매일 들어왔었는데 업데이트 해줘셔 고마워요.. ^^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통증 앞에선 그 강함도 시들시들… ㅠㅠ 하루에도 감정의 기복이 왔다갔다 하네요.
      힘내겠습니다.

  5. Clara · February 19, 2016 Reply

    ㅎㅎ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얼른 재활에 들어가실 수 있으신것 같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좋은 분들이 주위에 많이 계셔서 더욱 다행스럽구요~!!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네 일찌감치 시작해서 일찌감치 끝이 나야할텐데 말이에요 ㅎㅎ
      TGIF!

  6. Jihye Kim · February 19, 2016 Reply

    정말 다행이네요…
    항상 나쁜 것 중에서 좋은 것을 찾는 버릇으로 보자면 아마 아이들은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정말 즐거울 거에요. ^^
    열심히 무릎 운동 하세요, 홧팅~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네 처음엔 그랬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엄마땜에 어딜 못가서 제가 막 미안하고 그래요 흑흑
      홧팅 감사합니다!

  7. Helen · February 20, 2016 Reply

    So glad to hear good news!! I know that it is extremely painful and hard, but I know that you can do it! God will carry you through this time. Wishing you a fast recovery!

  8. 은철 · February 20, 2016 Reply

    저런.. 누나다쳤었어요? 무려 깁스를.. 생각만해도아팠겠다 ㅠ.,ㅠ
    몸조리잘하시구요.. 빨리좋아지세효!! 기도할께요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어 진짜 아프더라 ㅠㅠ 정말 생각나면 기도해줘 얼른 낫게. 바깥세상이 그립도다. 고마워!

  9. Christine · February 21, 2016 Reply

    이런 말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혜원님, 정말 인복이 많으세요
    그 동안 다 쌓으신 거겠지만 그 인복 많은게 참 보기좋고 부럽네요
    얼른 나으시길 바라고요, 미국은 재활훈련은 정말 일찍부터 시키더라고요
    하긴 제왕절개로 아기 낳은 산모들 수술 담날 샤워시키고 걸으라고 하잖아요

    http://blog.naver.com/rfiennes/220598267896

    http://blog.naver.com/rfiennes/220620119173
    가끔 들어가보는 블로그인데요, 혹시나 도움 되실까 싶어서요
    하루가 다르게 빨리 빨리 낫길 바랄게요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맞아요. 제 동생도 제왕절개하고 너무 고생했어요. 블로그링크 넘 잘봤어요! 저랑은 다른 수술인데 같은 브레이스 사용하시며 씩씩하게 블로그 쓰신것보니 힘이 나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10. · February 22, 2016 Reply

    힘내세요^^ 다행히 주변에 좋은 분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네요^^ 혜원님의 인복이 부러워요^^ 전 저만 운이 없어서 그런가 했었는데….저두 여러 나라의 병원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환자가 본인의 증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알고 있는게 중요하겠더라구요. 그리고 혜원님처럼 의심이 가는 부분에 의구심 표출을 해야지 아님 병원내 의사소통의 문제를 결국은 환자가 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내가 생각한 ‘상식’을 때론 적용해 보는 것도 아이러니 하게 최소의 나의 보호장비가 되더라구요. 긍정마인드 햬원님 화이팅!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병원내 미스커뮤니케이션이 생각보다 흔한일이란것도 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이렇게 허술하다니… 무섭네요.
      좋은 레슨이 된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11. Mindy · February 25, 2016 Reply

    병원에서 의사말, 간호사말, 전문의말 다 다른걸 둘째 어렸을때 경험했던 저로서는 혜원씨 글 읽으면서 구구절절 이해가 되네요.
    어쨌든 두발로 서시고 재활 시작 하셨다니 화이팅이에요~! 넘 아플것같아 저 이 꽉 앙~~물고 글 읽는데 으앙~ 눈물이 나네요.ㅠㅠ
    그래도 가로로 부러져서 다행이라는 말씀에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고가요. 혜원씨 힘내요!!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전 이렇게 해서 병원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네요. 아이가 아플때 그런 미스커뮤니케이션과 씨름해야했더라면 정말 너무 화가났을거 같애요. 네 다행인게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더 힘을 내야겠죠? 감사합니다!

  12. HK · February 26, 2016 Reply

    혜원님,
    정말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와보게 되었는데, 이런 큰 일이 있었네요!
    그래도 수술도 잘 되었고,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나뉜거라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구요,
    이 과정이 너무 힘들고 걱정스럽기도 하시겠지만, 주변의 큰 사랑과 격려와 encouragement 에 힘입어 더 건강한 혜원님이 되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화!이!팅!!

    • 퍼플혜원 · February 26, 2016 Reply

      네 감사합니다. 저도 이 일을 통해 더 강한 무릎으로 더 열심히 뛰는 엄마가 하루빨리 되고싶어요^^ 많은 분들의 격려가 말로 표현 불가일정도로 많은 위로가 된답니다. 항상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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