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의 삶과 음악, 그리고 가족이야기가 담긴 요리책.
항상 엄마에게 부탁하는 라메종 잡지에서 우연히 보게되어 이번에 오실때 이 책을 부탁했었다.
뮤지션인 정명훈이 요리를 해봤자 얼마나 잘하겠어.. 그냥 베스트셀러라니 한번 보기나 하자..라는 의도에서 부탁을 했었는데 내가 너무나도 아끼는 책이 되어버렸다.
억지로 스타일링을 하지 않고, 편안하고 소박한 모습의 깔끔한 그의 요리에 반해버려 정말 요리는 이렇게 해야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음악가가 아니면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정명훈의 책에서, 그것도 요리책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줄이야. 프로방스에 사는 그의 생활과 인생관을 읽으며 나도 그렇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어려움도 많이 겪은 그이지만, 지금의 정명훈은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다.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참, 각 요리와 함께 어울리는 와인이 아닌, “요리와 함께 즐길만한 음악 목록”이 있어 음악가의 요리책이란걸 티를 내기도 한다.^^

———————————-
(이 책에 대해 더 읽을거리가 없나 검색하던 중 찾은 여성동아 기사)

[Cooking Interview]

정명훈이 처음 공개하는 ‘나의 소중한 가족&즐거운 요리…’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 펴낸 정명훈
——————————————-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이란 요리책을 냈다.
그의 손을 통해 탄생한 60여 가지의 요리와 이에 어울리는 명곡 57곡이 담겨 있는 이 책에서 정명훈은 자신의 인생과 음악,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부산 해운대에서 만난 그와의 즐거운 대화 & 추천 이탈리아 요리 레시피 공개.
——————————————-

“마에스트로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난 8월31일, 부산. 정명훈과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곳은 해운대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커피숍이었다. 그가 도착하자 진행을 맡은 공연기획사 CMI측의 한 인사는 그의 도착을 이렇게 알렸다. 주변의 그 깍뜻한 예우 속에서 정명훈은 수줍은 웃음으로 어색함을 감추기 바빴다. 유럽에서는 그를 ‘마에스트로 정’이라고 부른다. 1953년생이니까 이제 정확히 반세기를 살았다. 나이 50에 ‘거장’이란 닉네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과연 전세계적으로 몇이나 될까?

“저는 말을 잘 못해요. 특히 이렇게 뭘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에 대한 인터뷰의 서두는 한결같다. 말을 잘 못한다는 그의 인사로 시작된다. 강연을 할 때도 그는 “원래 말을 못하는데 마이크를 앞에 놓고 하는 말은 더 못한다”는 말로 서두를 열곤 했다. 그렇다고 그가 실제 그렇게 눌변은 아니다. 그는 다만 인터뷰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타일인 듯싶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 누구에게든 편한 일은 아니겠지만, 오랜 세월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그가 이토록 인터뷰를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아마 천래의 수줍음 때문일 듯하다.

아버지 요리솜씨 물려받아 열살이 채 안됐을 때 주방일 척척

“제가 여덟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부모님은 워싱턴 인근에 한국 레스토랑을 내셨어요. 저희 아버지는 미국에 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던 분이셨지요. 그런데 주방장을 맡아서 아주 대단한 솜씨를 보여주셨어요. 저도 여덟살 때부터 6년간 식당에서 일했기 때문에 요리엔 좀 자신이 있었고, 게다가 좋아했죠. 지금도 집에서 쉴 때는 항상 요리를 해요. 그냥 가정요리죠. 주방에 있는 재료 다 쓸어넣어서 이것저것 만드는 요리를 잘해요. 음악만 계속 했으면 아마 이렇게 되지는 못했을 거예요. 식당에서 일하고 신문배달도 하면서 공부했기 때문에 더 재미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는 최근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이란 요리책을 냈다. 그가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긴 했지만, 요리책까지 낸 것은 그의 팬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을 듯싶다. 하지만 그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면 요리가 그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녀들의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부모님은 일곱 남매를 데리고 그가 여덟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교육 이민을 갔다. 천재적 자질을 보이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엔 당시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 하지만 낯선 미국 땅에 일곱 남매를 데리고 간 동양인 이민자의 삶이 수월하지는 않았다. 이들 가족은 생계를 위해 워싱턴 인근에 한국 식당을 열었다. 이번에 쓴 책에서 그는 자신의 미국 이민생활 초기의 풍경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까지 감행하신 부모님은 워싱턴 대학 앞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따로 사람을 쓸 형편이 못 되어 부모님은 물론 형제들이 모두 식당 일을 해야 했기에 어머니와 형님이 서빙을 맡고 아버지와 내가 주방을 맡았다. 그전까지는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시는 걸 보지 못했는데, 음식 솜씨가 좋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 솜씨를 물려받았는지 요리를 곧잘 하던 나는 아버지가 주방을 비워도 혼자서 음식을 척척 만들어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때 내 나이 열살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명소 누이와 명화, 경화 누이는 당시 뉴욕에서 학교를 다녀 방학 때만 식당 일을 거들 수 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제가 요리를 해요. 제 생활은 음악과 가족이 전부예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연주 생활이 바빠서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생일이라고까지 했죠. 요즘은 부쩍 더 가족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 책 제목인 ‘Dinner for 8’은 그런 뜻에서 지은 거예요. 우리 아이들에게 다 배우자가 생기면 우리 식구가 여덟명이 되거든요.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정말 성대한 만찬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연주 여행으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힘들어지고 기껏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여름 휴가 같은 때뿐이었다. 휴가 기간은 먹기 위한 파티로 이어졌다. 아침에 생선을 사서 회로 먼저 먹고, 조개, 랍스터, 새우를 넣어 스파게티를 해먹고, 생선을 불에 구워먹다 남은 것은 찌개 끓여먹고….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유년 시절이나 그가 아버지가 됐을 때나 똑같은 기쁨을 주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요리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아도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 넘치는 요리.

“부모 형제가 내 음악의 모태, 아내와 아이들이 내 삶 변화시켜”

그는 2002년 초, 프로방스에 전원 주택을 마련했다. 휴가를 즐기듯 살아갈 가족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 집 앞으로는 오래된 올리브 농장이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는 숲이 울창해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곳이다. 실제로도 대지의 한쪽 끝은 약간 높고 집이 들어서 있는 가운데는 푹 들어가 있어 멀리서 보면 꼭 새둥지 같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여성 두명을 고르라면 한명은 역시 어머니 이원숙 여사일 것이고 다른 한명은 부인 구순열씨(54)일 터다. 어머니 이여사는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정명훈을 세계적 스타로 키워낸 장본인. 7남매를 둔 이여사는 정트리오 이외의 자녀들도 목사로, 교수로, 의사로, 사업가로 키워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며 1달러씩 받은 팁을 모아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셨고 지휘에 눈길을 두는 아들이 원하는 음악회를 볼 수 있도록 아버지 몰래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 삯을 마련해주기도 하셨어요. 어머니는 식당 일뿐 아니라 학교에서 회계며 경영 공부까지 하느라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바쁘셨는데도 자식들 학교와 공연장, 오디션장 등에도 따라다녔으니 대단한 분이죠. 제가 열다섯살 때는 한국 학생을 한명도 받아준 적 없는 명문 사립학교에 저를 입학시키려고 직접 학교 책임자를 설득하시기까지 했죠. 어머니는 입학은 물론 장학금까지 받아내셨어요.”

그리고 또 한명의 여인이 올해로 결혼 생활 24년째를 맞은 부인 구순열씨다. 그는 ‘부모와 형제들은 내 음악의 모태가 되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고백한다.

‘우리 결혼 생활은 올해로 24년째에 접어든다. 19세 때 연애를 시작해 7년 가까이 사귀었으니 서로 알고 지낸 기간까지 합하면 30년이나 된다. 우리가 결혼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는데 가장 큰 난관은 집안의 반대였다. 아내는 매형의 여동생이었고 나이도 나보다 네살 많은데다 스물다섯살 남자에게 결혼은 너무 이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젊은 시절, 그는 날카롭고 비관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부인 구씨는 긍정적이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알게 해주었다. 실제 그는 결혼 후 부인을 조금씩 닮아가며 자신의 단점을 상당 부분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과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부인을 따라 산책도 하고 정원도 돌보면서 급하던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고 무대 위의 삶과 평범한 일상 사이에서 균형도 찾게 되었다는 것.

“제가 어렸을 땐 피아노와 초콜릿 외엔 인생에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러다 미국에 가서는 스포츠에 빠져들었죠. 물론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서 음악은 제게 모든 것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니까 아이들이 제게 넘버 원이 되더군요.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셋 다 여자친구까지 있어요. 조만간 8인분 식탁을 차려야 할 때가 올 것 같습니다(웃음).”

그는 아들만 셋을 뒀다. 진(眞), 선(善), 민(敏). 막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으면 미(美)라고 지었겠지만 아들이라 민이 됐다. 그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았던 터라 위에 두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막내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에겐 특별히 강요하는 것 없이 자신의 길 찾아내길 바랄 뿐”

“아이들에겐 음악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큰아이만 피아노를 조금 가르쳤는데, 희한하게도 큰아이만 음악을 안해요. 막내 민이는 음악에 열심이죠. 열살 때 기타를 조금 치다가 열세살에 콘트라베이스를 잡았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둘째는 재즈를 하고 있죠. 둘째가 좀 걱정스러운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먹고 살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자신이 분명히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다른 것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기에 간섭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의 교육 철학은 그의 어머니와 같다. 올해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큰아들이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잘 모르겠어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내면 좋겠는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도록 지켜봐주는 것. 그의 어머니 또한 그에게 그렇게 해주지 않았던가? 피아노와 지휘를 놓고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때 그의 어머니 이여사는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도록 지원해주었다. 모두 뒤늦게 지휘로 바꾸는 것이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어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휘쪽으로 기울고 있는 그의 마음을 존중해주었다. 그 또한 그런 어머니의 교육 철학을 따르려고 한다.

정명훈은 네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 3년 만에 서울시향과 협연을 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지난 7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에 입상하는 등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의 누나인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더불어 ‘정 트리오’라 불리기도 했다.
어찌됐건 아이들이 모두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대할 때마다 나는 이들이 내 인생의 기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내 삶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해운대 해수욕장 앞에서 사진을 찍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이구, 다 나만 쳐다보네” 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무대에서는 그토록 카리스마 넘치는 마에스트로가 그토록 수줍음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의 음악은 바로 그런 순수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Copyright donga.com Privacy policy.
email: newsroom@donga.com

 

 

8 Comments

  1. 크리스 · July 8, 2004 Reply

    저도 보긴했는데(서점서^^) 편집이 시원시원하니…좋긴한데…딱 요리책같진 않았거든요.여기서 해보신 요리 있으신가요? 맛을 어떨지 궁금해요…

  2. Jen · July 8, 2004 Reply

    히히히 드디어 올려놓으셨군요…제 남편 선생님께서 정명화교수님 이셨거든요… 정명화 교수님도 정말 가슴으로 연주하고 음악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라서 많이 존경하는데, 더군더나 제가 꼬마때부터 아무 이유없이 동경했던 분이 요리책까지 내셨다니…벌써 엄마께 주문했지 뭐에요…담 소포에는 이 책이 들어있을거예요…세 자녀를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서 은행대출을 받으시기 위해서 세 자녀를 담보로 걸으셨다죠? 참 대단하신 부모님이세요…히히히 그 음악성이나 요리솜씨도 아버님이 그러셨군요!!! 잉 빨리 기다려 지네요…요리책 보다는 정명훈 음악가의 삶의 눈맛을 볼수 있는 기회가 될것같아서 더 설레지는걸요?

  3. 혜원 · July 8, 2004 Reply

    마자요. 요리보단 정명훈씨의 인생관을 배울수 있는 책인거 같아요. 한번도 거기서 만들어본 요리는 없거든요. 아직. 근데 시간이 나는대로 해보려구요. 그렇게 어려운건 없었던거같아요. 요리책이라기보다 정명훈과 그의 요리에 대한 자서전이라고 하면 딱 일거 같네요.^^

  4. 허지연 · July 12, 2004 Reply

    사보고 싶은 책인데요…
    항상 유용하고도 특이한 요리책들 소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혜원님..더위도 잘 이겨내세욥~^^

  5. GODIVA · July 22, 2004 Reply

    덕분에 잘 읽었어요.
    정명훈의 또다른 매력이 느껴지는군요,,
    얼마전에 알라딘에서 책 주문 했는데,
    요거 놓친게 아쉬울 정도네요..
    음식하는 남자….정말 멋지죠?

  6. 혜원 · July 22, 2004 Reply

    지연님, 여기 올라온 책들 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좀 더 자주 올려야하는데 생각만큼 안되네요 그게…
    고디바님, 저도 이 책읽고 정명훈의 다른면을 봤다지 몹니까. 요리는 지휘와 같단말이 왜이리 와닿던지..

  7. 연정 · July 30, 2004 Reply

    나도 이 책 함 사서 봐야겠는걸~

  8. Joanne · August 10, 2004 Reply

    저도 이 책 손꼽아 기다리다 얼마전에 갖게 되었답니다.
    그분의 인간적인 매력에 더더욱 빠지게 된 책이었어요.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