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오후 부엌에서

컴터가 없으니 집에 있는 한 신선다운 생활을 하고있다고 해야하나…아님 아줌마다운 생활을..^^;

보통땐 컴앞에 앉아있을 약속 없는 일요일 오후, 난 부엌에서 살았다.

한국마켓에 모처럼 가늘가늘한 부추가 있길래 한뭉치 사왔는데… 고무줄을 풀고 씻으려고 속을 들여다보니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흙에서 갓파낸듯한 상태더군. 부추 상할까봐 고무줄도 가위로 잘라주는 배려까지 했었는데…
부침개를 해먹을까 해서 전날 불려뒀던 메주콩을 불위에 얹어놓고 부추 다듬기 시작.
항상 이런거 고를때 같은가격에 손해는 안보려고 젤 큰뭉치를 고르는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이 많은거..짜증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헹궈도 없어지지 않는 뿌리끝의 흙. 하나하나 나의 손이 안가면 지워지지 않는것들이니..
이게 한 한시간정도 후의 남은것들. 너무 지겨워 귀엔 음악을 꽂고 서있었다. -_-;

부추 하나 다듬으며 중간중간에 소금 뿌려놓은 배추의 상태 확인도 하며 삶아지고 있는 메주콩의 상태도 확인하고.. 기대치도 않던 멀티태스킹을…

전에 벌벌떨며 담근 김치가 잘 익어 목에 힘주고 다니다 이번엔 배추 두포기로 늘려서 큰병으로 담궜다. 그냥 눈으로 이것저것 섞어 담긴 했는데 밥을 너무 많이 넣은거 같기도 하고..쩝. 잘 익어야할텐데… 확실히 처음보다는 배추 절이는것도 요령이 생기는것이 손움직임이 달라진것을 느낀다. ㅎㅎ 냉동해둔 파밖에 없어 순간 당황하다 다행히 부추가 있어서 넣어줌.

어떻게 타이밍이 맞게 김치가 끝나자 콩도 다 삶아졌다. 푸드프로세서에 콩을 생수넣고 간 후, 체에 걸러 꼭 짜내면 국물은 콩국수, 남은 비지는 비지찌개나 부침개.
이번주 저녁식사 한끼가 될 콩국은 냉장고에. 콩비지는 냉동실에 일회분으로 나눠 냉동시켜둠. 작년엔 지겹도록 먹은게 콩국수였던것 같은데…벌써 8월이라니. 올여름은 아무런 추억 없이 이렇게 지나가는건가.

드디어 부추손질을 끝내고 버섯 새우 오징어 등이 들어간 부침개 반죽 옆에 끼고 후라이팬앞에 섰다.

부침개 몇조각 들고 식탁으로 가니 벌써 8:30이더군. 허억~

이렇게 몇시간에 걸쳐 만든 부침개(절대 부추는 사지 말아야겠다 -.-;;)를 저녁삼아 먹고 Finding Neverland 디비디를 보며 이번주말을 마감했는데, 주말 아니면 할수 없었던 음식들을 해뒀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왜 내가 이 더운날 몇시간을 바다구경은 못할망정 좁은 부엌에 서서 눈에 띄지도 않는 노동을 하며 보내버렸나 하는 한심함도 어쩔수 없이 느꼈다.
저 김치한병이 어떻게 익느냐에 따라 나의 일요일 오후 노동의 가치가 결정되는건가.

 

 

7 Comments

  1. 성현경 · August 1, 2005 Reply

    미혼에 제 부엌도 없는 처지이나
    ” 뿌듯함, 한심함, 일요일 오후의 가치와 김치 한 병”.
    이 말씀에 제가 이리 공감이 갈까요…
    매일 와보는데 오늘은 딱 제 맘같아서 늦게나마 짧은 메모 남깁니다. ^^

  2. 박지현 · August 1, 2005 Reply

    나도 지난 번 영양부추 다듬으며 먹는거에 비해 씻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다시는 안사야지 했는데 그래도 부추를 보면 또 사게 되네..맛나니까 그래도 가끔씩은 사서 먹어야지.

  3. dana · August 2, 2005 Reply

    어제 비가 와서.. 지글지글 부침개가 너무 먹고싶었는데
    이렇게 혜원님이 맛있는 사진을 ㅜ_ㅜ 너무 좋아요

  4. 홍신애 · August 2, 2005 Reply

    생생한 부엌 다이어리 정말 공감이에요. 하루 종일 언니네 부엌에서 붙어 있었던 느낌… 근데 막상 보이기만 하고 먹을수 없는 저! 부추전은 고문네요… ㅎㅎ 괴로워라….^^;; 전 부추전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산후 조리도 부추전으로 할 정도였다니까요. 피를 맑게 하고 불순물을 뺸다나 붜라나… 부추가요.ㅎㅎ

  5. 혜원 · August 2, 2005 Reply

    현경님 반가워요. 오늘아침에 확인해보니 김치간이 넘 싱거운거 같아서 급하게 엄마한테 전화걸어 어떻게 수습을 하긴했는데..모르겠어요..흐흑 암튼 공감하신다니 더더욱 방갑네요.
    지현아, 정말 옆에 누가 재료만 손질해주는사람이 있다면 신나게 요리하겠다. ㅋㅋ
    dana님, 몇조각 드렸음 좋겠는데… 전 아주 화창한날에 해먹었어요. ㅎㅎ
    신애씨, 부추가 그렇게 몸이 좋다니 이고생을 해서라도 사먹어야겠네요. -.-;; 담엔 남편 시켜봐야지.

  6. 앤지 · August 4, 2005 Reply

    미국 장은 갔다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기도 하고 바로바로 냉장고에만 챙겨 넣으면 되는데 한국장은 다녀 오면 바로 넣을 것 하나도 없고 죙일 다듬어야 돼요. 에구 힘들어 못하겠다 해놓고선 또 사오고.. ㅋㅋ

  7. 혜원 · August 5, 2005 Reply

    그래서 한식이 손이 많이 가고 어렵다는거 같애요. 아는 미국사람이 한국음식 배운다고 수업들었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뛰쳐나왔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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